이렇게 생긴 자사호를 서시호西施壺라고 한다. 여기에서 서시는 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히는 그 서시西施가 맞다. 호의 형태와 서시가 무슨 관계가 있어 서시호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의아할 것이다. 이 호의 원래 이름을 듣는다면 아마 이해가 될 것이다. 이 차호의 원래 이름은 서시유西施乳였다. 이 차호를 위에서 바라본다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보통 서시호의 형태는 알맞은 크기의 원형으로 되어있다. 둥근 원형일수도, 약간 납작한 원형일수도 있다. 그것은 작가의 미적 감성에 달린 것이다.
한 편 서시호 말고 귀비호도 있다. 커다한 반원 형태의 자사호를 귀비호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여기에서 귀비는 양귀비를 의미하며 물론 풍만한 양귀비의 가슴을 형상화하여 그렇게 명명한 것이다. 서시호와는 달리 귀비호는 정형화된 형태의 이름이 아니라 작가들이 임의로 붙여진 이름에 가깝다. 하지만 서시호는 명대 만력 연간,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년 전 자사호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시기에 등장한 유서 깊은 형태의 차호이다.
그렇다면 서시유가 왜 서시호가 된 것일까? 이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경건한(?) 찻자리에서 서시 젖가슴이나 들먹이고 있자니 얼마나 낯뜨거웠을까? 자연스럽게 유乳자를 빼게 되었다.
장취안린張泉林의 서시호는 다소 납작한 형태의 서시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름이 같은 동그란 원 형태의 서시호보다 다소 납작한 타원형의 서시호를 선호한다. 2500년 전 미인의 가슴이 무슨 성형수술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밥공기 엎어놓은 것처럼 동그랬을까? 때문에 아주 동그란 서시를 보면 현대의 의란성 쌍둥이 미인을 보는 듯하여,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반감된다.
잠깐 옆길로 새어 서시가 어떤 인물인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서시는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춘추시대 월越나라에서 생존했던 여인이다. 서쪽에 사는 시施씨 성을 가지고 있는 여자라는 의미로 서시라고 부른다. 서씨西氏가 아니라 시씨施氏이다. 서시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최근 위키피디아나 중국의 바이두를 찾아보면 서시의 이름이 밝혀진 것을 알 수 있다. 본명이 시이광施夷光이란다. 이 이름의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타이완에서 2012년에 출판된 가오췬高群이 지은 《도문판 강산제일미인 서시 비전圖文版江山第一美人西施秘傳》이 그 출전이다. 그런데 갑자기 서시의 이름을 이 사람이 찾아내었다? 말이 되지 않는 듯하여 사고전서를 뒤져 보았다. 마침 《춘추전국이사春秋戰國異辭》 제52권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또한 미인 두 명이 있어 하나는 이광이요, 다른 하나는 수명인데 오나라에 공녀로 보내졌다又有美女二人一名夷光二名修明以貢於吳.
《춘추전국이사》는 청대 진후요陳厚耀가 춘추전국시대의 여러 역사서를 보고 이를 종합하여 펴낸 책이다. 그렇다면 진후요가 참고한 이전 시기 관련 서적은 무엇이었을까? 그 책은 위진남북조 시기에 나온 《습유기拾遺記》이다.
중국고전소설 전공자들은 이 《습유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흔히 지괴志怪 혹은 지괴소설志怪小說이라 불리는, 그 이름도 남겨진遺 것을 주워서拾 만든 기이한 내용을 기록한 소설인 것이다. 결국 시이광이라는 서시의 본명은 타이완의 작자도, 청대의 역사서도 아닌, 서시가 살았던 때로부터 약 700여 년이 지난 후 만들어진 소설이 그 출처였던 것.
하나 더 항저우杭州에 서호가 서쪽 호수가 아니라 서시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된 것이라는 말도 있다. 사실 당唐나라 시절 서호는 그저 서쪽 호수에 불과했다. 서호가 서시와 연결된 것은 여기저기 끼지 않는 데가 없는 송대宋代의 아이돌 소동파蘇東坡의 시 <호수가에서 술을 마시는데 맑았다 비 내리다 한다飮湖上初晴後雨> 때문이다. 이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欲把西湖比西子 서호와 서시를 비교하려니
淡粧濃抹總相宜 엷은 화장 짙은 분장 모두 서로 어울려
이 때부터 사람들은 서호와 서시를 연관시키고 자연스레 서호하면 서시를 떠올리게 되었다. 중국 사람들의 뛰어난 서사 만들기 실력, 이들은 역사와 소설을 정말 구분하지 못하는 걸까? 후베이 츠비赤壁에 있는 적벽대전 전쟁터에 가면 테마파크를 만들어 놓았고 그 안에는 민국시기에 만들어 놓은 듯 보이는,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부른 장소를 기념하여 지은 전각이 하나 있다. 시와 소설의 서사는 점차 자연스럽게 역사로 편입된다. 적어도 중국에서는 ⋯⋯
암튼 결론. 서시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사실 서시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하지만 꼭 실존했을 거라 나는 믿는다)
서시호를 설명하려다 이것저것 많은 것을 말하게 되었다..
이 서시호의 니료는 주니朱泥이며 반수공半手工으로 만들어졌다. 보통의 주니보다 이 차호의 색이 짙은 까닭은 철홍분이라는 철가루를 넣기 때문이다. 이렇게 철가루를 넣으면 대홍포大紅袍 – 무이암차에도 같은 이름의 우롱차가 있다 – 라고도 부르는 하는 대홍니大紅泥의 색감을 낼 수 있기 때문. 대홍니는 자사紫砂 가운데에도 가장 희소한 니료 가운데 하나이다.
장취안린張泉林은 1972년 장쑤 이싱에서 태어났고 장쑤성 공예미술대사 추리즈儲立之에게서 자사 공예를 배웠다.
이 서시호는 2006년에 만들어졌으며 같은 해 안국동 심천에서 30만원에 구입하였다. 2022년 기준 80만원이 적정 가격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