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호의 재질은 연한 묵색墨色의 자사로 높은 몸통과 북鼓 모양의 배, 굽은 부리, 긴 귀 모양의 손잡이, 좁아지는 어깨, 곧은 목을 지니고 있다. 입과 뚜껑이 각진 선으로 잘 물려있으며 평평한 뚜껑平蓋에 세 마디의 높은 뚜껑꼭지를 하고 있어 단아하고 고풍스럽다. 호 바닥에는 “소형유 만들다邵亨裕制”라는 전서체의 인장이 찍혀있다. 《양선사호도고陽羨砂壺圖考》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옛날 상하이 서쪽에 살았을 때 장씨와 동년배인 맹췌의 책상머리에서 우연찮게 청대 주견朱堅(자는 석모石某)의 《호사壺史》를 얻었는데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시대빈은 호를 정교하게 잘 만들었고 소문은 형제는 스승 시대빈의 비법을 홀로 터득하였다. 문은은 만든 차호 사이에 형유亨裕라고 이름을 적었는데 후에 이를 모방하여 만드는 이가 많아 (이것으로) 한 눈에 진품과 위조품을 판별할 수 있었다.’ 지금 장곡추張谷雛 선생이 구입한 차호 두 점은 모두 진품으로 또한 소형유가 만든 매우 진귀한 것이다. 을해년 (1935년) 광둥 신회당에서 당천여唐天如 (자는 은부恩溥) 적다.曩歲左滬,於蔣同年孟萃案頭偶撿石某壺史,言大彬精製壺,而邵文銀兄弟獨得其秘,文銀所制壺間以亨裕署款,後摹仿者多,而真贗一望可辨。今谷雛先生得茗壺二事皆精品,又為邵氏所制可寶也。乙亥新會堂恩溥識。”
이경강李景康, 장홍張虹[1]이 펴낸 《양선사호도고陽羨砂壺圖考》 상권은 1937년 홍콩에서 출판되었는데 하권은 항일전쟁 중 폭발사고로 출판할 수 없었고 원고 또한 외지에서 사라져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묻혀있었다. 근래 싱가폴 쑹즈친宋芝芹 선생의 허락을 받아 1982년 잔쉰화詹勛華가 《이싱도기도보宜興陶器圖譜》를 펴낼 때 《양선사호도고陽羨砂壺圖考》 하권의 글과 그림을 함께 정리하고 보충하여 간행하였다. 하권을 잃은 후 천신만고 끝에 다시 얻게 되었으니 정말로 천운이라 하겠다. No.34
[1] 이경강(李景康, 1889—1960)의 자는 봉파鳳坡로, 광동 남해南海 사람이며, 백호산관百壺山館의 주인이다. 1915년에 홍콩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일생 동안 주로 교육과 학사 업무에 종사하였고, 회화 방면에서도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며 여러 중국화中國畫 연구회에 참가했다.
장홍(張虹, 1891—1968)의 자는 곡추谷雛이고 호는 신재申齋로, 광동 순덕順德 사람이며, 벽산호관碧山壺館의 주인이다. 산수화를 잘 그리고, 시를 지으며, 많은 작품을 소장하였고, 감정에도 능숙했다. 고대 옥, 서화, 경전, 자사호 등을 홍콩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였다.
《양선사호도고陽羨砂壺圖考》는 상하 두 권으로 나뉜다. 상권은 1934년에 완성되었으며, 창시創始, 정전正傳, 별전別傳, 아류雅流, 대고待考, 별승別乘, 부기附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는 《양선명호계陽羨茗壺系》와 《양선명도록陽羨名陶錄》의 내용을 이어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분류하고 고증하였다. 부기에는 “사질출산士質出產, 제공요화製工窯火, 상감총화賞鑒叢話, 전현문한前賢文翰, 시인제영時人題詠” 등이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은 명 중기부터 청 말기 선통 연간까지의 내용을 고증하여, 《양선명호계》와 《양선명도록》 이후에 다시 나온 중요한 이싱 자사호 예술 발전 관련 전문 저작이다..
한편 이 책의 표제는 유명 화가이자 서예가인 황빈홍(黄賓虹, 1865 ~1955) 써주었는데 이 때문에 바이두와 같은 곳에서는 빈홍을 장홍과 구분하지 못하고 《양선사호도고》 의 저자로 기록하고 있다. 황빈홍 관련 이야기는 공춘호와 성사 도배에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