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無款 능파선자호凌波仙子壺

이 차호의 이름은 능파선자호凌波仙子壺이다. 호의 뚜껑 꼭지에서 뚜껑, 몸통, 물대와 손잡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근문筋紋으로 되어있다. 능파선자는 수선화를 가리키는 말로 이 차호의 형상이 수선화를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져 명명된것이다.

수선화를 능파선자라고 하는 것은 북송대 시인 황정견黃庭堅의 시에서 처음 보인다. 그는 조식曹植의 <낙신부洛神賦>와 《한서漢書》의 경국지색傾國之色 등의 전고典故를 활용하여 <왕충도가 수선화 쉰 가지를 보내 선뜻 그 마음을 알고 그를 위해 시를 짓다王充道送水仙花五十枝欣然會心爲之作詠>에서 수선화를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凌波仙子生塵襪 물결 위 선녀의 먼지 이는 버선은
水上輕盈步微月 물 위를 사뿐히 걷는 초승달
是誰招此斷腸魂 누가 이처럼 애끓는 혼을 불러
種作寒花寄愁絶 겨울꽃으로 심어 놓아 깊은 시름 주었나
含香體素欲傾城 향기 머금은 아름다움 온 나라를 흔들고
山礬是弟梅是兄 산반화는 아우, 매화는 형을 삼았네
坐對眞成被花惱 홀로 앉아 마주하니 진실로 황홀하여
出門一笑大江橫 문을 나서 크게 웃으니 큰 강이 비껴간다.

첫 구절은 조식曹植 <낙신부洛神賦>의 ‘물결을 밟아 사뿐히 걸으니 버선 끝에 먼지가 일고 움직임에 일정함 없이 위태한 듯 평안한 듯하다陵波微步, 羅襪生塵, 動無常則, 若危若安’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두 번째 구절의 미월微月에 대해 송대의 문학가 임연任淵은 ‘대체로 버선은 초승달의 형상이다蓋言襪如新月之状’라고 하였다.

여섯 번째 구절에서 산반화山礬花는 수선화보다 늦게 봄에 피고 매화는 수선화보다 일찍 겨울에 피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송대 황정견黃庭堅이 <장난삼아 고절정 주변 산반화로 지은 시 서문戲詠高節亭邊山礬花詩序>에서 언급한 내용이 아래와 같이 있다.

강호 남쪽 들판에 작고 하얀 꽃이 있는데 나무의 높이가 수 척이나 높았다. 봄이 되면 향기가 진동하는데 시골 사람들은 이것을 정화鄭花라고 불렀다. 왕형공王荊公(왕안석)이 일찍이 이 꽃을 구해 심고 시를 지으려 했는데 그 이름이 조잡하여 – 《시경詩經·정풍鄭風》은 음란한 노래로 왕안석이 정화라고 하는 이름을 조잡하다 느낀 이유이다 – 내가 그에게 꽃의 이름을 산에 있는 명반이라는 의미인 산반山礬으로 하자고 청하였다. 이는 시골 사람들이 정화를 따서 노란색으로 물들이는 데 사용하였는데 명반을 쓰지 않아도 색이 났기 때문이었다. 江湖南野中有一種小白花, 木高數尺, 春開極香, 野人號爲鄭花. 王荊公嘗欲求此花栽, 欲作詩而陋其名, 予請名曰山礬. 野人采鄭花葉以染黃, 不借礬而成色, 故名山礬.

한편 이러한 형태의 차호 이외에 다소 납작한 형태의 근문기筋紋器에도 능파선자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이는 모두 수선화의 아름다운 모습을 모방하여 만든 까닭이다. 때문에 능파선자호는 특정 형태의 차호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수선화를 모방한 근문기에 두루 사용된다.

2007년 즈음 지유명차에서 션졘챵沈建强의 중정합국호中汀合菊壺를 구입하여 사용하다 뚜껑 꼭지 부분에 파손이 보여 반납한 적이 있었다. 이후 근문기와는 인연이 없었는데 이후 서교동 수미헌의 홈페이지에 주니朱泥로 만든 이 차호가 보여 부랴부랴 방문하여 확인하고 구입하였다. 션졘챵의 합국호처럼 전수공의 단단함이나 독특함이 보이지는 않고 누가 만든 지도 알 수 없으나 계속 보아도 질리지 않는 것에 만족하고 사용하고 있다.

2017년 즈음 서교동 수미헌에서 30만원에 구입하였다. 2022년 기준 판매가는 60만원이다.